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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파묘' 험한 것의 정체, 후기, 결말, 쿠키

re비타민트 2024. 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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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묘는 상반기 최고 기대작으로 오컬트 영화를 좋아하는 1인으로서 내가 가장 기다렸던 영화였다. 손꼽아 기다렸기에 2월 22일 개봉하자마자 바로 영화관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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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오컬트의 뜻은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신비주의적이고 초자연적인 현상을 탐구하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오컬트 영화는 초자연적인 사건이나 악령, 악마, 귀신, 초능력 등을 소재로 다루는 영화라 할 수 있다. 대표작으로 영화 '엑소시스트'가 있고, 드라마 '악귀'도 같은 장르라 할 수 있다.

예고편에 현혹되다

https://youtu.be/rjW9E1BR_30

파묘 1차 예고편 쇼박스 제공


일단, 개봉 전 TV예고편만 보고 화려한 캐스팅에 주인공 4명 모두 평소에 내가 좋아하는 배우들이라 영화에 대한 어떠한 정보 없이도 현혹되기에 충분했다. MBTI에 파워 N을 포함한 나는 사실상 예고편만 보고 어떤 영화일까 상상의 나래를 펼쳤었다.

실제 영화를 보고는 기대하고 상상했던 내용은 아니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나는 K-샤머니즘과 악귀에 대한 영화라 추측했고, 굉장히 미스터리한 공포를 떠올렸다. 나의 예상이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결론적으로 나를 현혹시키기에 충분했던 예고편은 잘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평소 나는 영화 보는 게 취미인데 기록하지 않으니 나중에는 내가 무슨 영화를 봤고 어떤 내용이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더라. 기록의 힘을 믿으며 후기를 적어본다. 참고로 쿠키영상은 없으니 엔딩 크레딧은 끝까지 보지 않아도 된다.

본격적으로 파묘를 파헤치기 전에 앞으로의 글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음을 알린다.

파묘 무서움?

전혀. 오컬트나 공포, 스릴러를 꽤나 좋아하는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공포는 사실 귀신이나 미스터리한 존재를 눈으로 확인하는 것보다 그 직전까지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 실체를 모르기에 파헤치는 과정, 몰라서 오는 공포, 무방비한 상태, 그 스릴감을 좋아해서 즐겨보는데 종종 실체가 등장했을 때 오히려 몰입감이 깨져버리는 경험을 하곤 했다.

물론, 실체가 등장한다고 모든 영화가 몰입이 깨지는 건 아닌데 파묘는 그랬다. 초반부가 너무 좋았기에 기대가 컸던 거 같다. 한마디로 절반은 흥미진진한 긴장감, 압박감이 있었지만 후반부는 항일영화로 장르가 달라졌다. 전반적으로 무서운 영화는 아니다.

파묘는 단순한 오컬트 영화는 아니었다. 일제강점기의 역사적 배경, 친일파와 일본군을 우리 땅에서 피헤치고 뿌리 뽑는 역사영화였다. 내가 기대한 것은 역사영화가 아니었기에 역사이야기로 흘러가는 후반부부터는 다소 당황스럽긴 했지만 오컬트와 역사의 결합이라... 그 시도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단지 몰입을 방해하는 '험한 것'의 실체인 진격의 거인의 등장에 피식피식 웃음이 났을 뿐.

영화 속 뱀 얼굴과 의미

영화를 보고 난 후 제일 각인되었던 부분이 잠깐 스친 뱀의 얼굴이었다. 머리 부분이 처녀귀신 얼굴을 하고 있었다. 너무 순식간에 지나가 내가 본 게 맞나 했는데 여자 얼굴은 맞았다. 처녀귀신으로 느낀 건 내 생각이다. 순간적인 이미지가 그렇게 느껴졌다.

그런데 왜 뱀이지? 여우는 여우 음양사와 관련된 거지만, 뱀의 등장은 이유가 뭘까? 그리고 뱀의 머리만 여자 얼굴인 이유가 궁금해서 영화를 본 후 가장 먼저 찾아봤다. 정체는 일본 요괴 '누레온나'라고 한다. 이 요괴는 뱀의 몸에 머리 긴 여자의 얼굴을 하고 인간을 잡아먹는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다.

정확한 감독의 의도는 모르겠지만 내 생각엔 여우 음양사의 범의 허리를 끊기 위해 묘에 박은 쇠말뚝인 정령을 지키기 위한 또 하나의 장치라고 여겨진다.

첫 번째 장치는 표면적으로 드러난 친일파의 관이고, 두 번째는 인간을 잡아먹는다는 일본 뱀 요괴. 영화에서도 뱀을 죽이려고 한 돼지띠 인부가 귀신에게 시달리다 동티 났다고 하며 눈에 피가 나고 화를 입게 된다.

험한 것의 정체 및 결말

반전은 험한 것이 하나가 아닌 둘이었다. 첫 번째 험한 것은 친일파 악귀였고, 두 번째 험한 것은 같은 묘에 첩장 되어 있던 일본 장군이자, 쇠말뚝용 정령이었다. 사실상 내가 느끼기에 비주얼적으로 제일 험한 것은 누레온나였지만.

결말은 통쾌한 해피엔딩이다. 상덕(최민식)과 봉길(이도현)이 일본정령에게 피를 보긴 했지만, 주인공 4명 모두 결국 죽지 않고 무사했다.

친일파 악귀는 친일을 통해 부를 얻고 자손들도 대대로 누리고 있지만, 자손들은 친일파의 자손임을 부끄러워하고 공개하길 꺼려한다. 일본에 충성했지만, 일본은 끝까지 철저하게 그를 이용만 했다.

끝내 범의 허리를 끊는(조선 정기를 끊고 정복을 위한) 쇠말뚝 정령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 썼으며, 살아서는 나라를 팔아 부를 누리며 살았지만 죽어서는 악지 중의 악지에 묻혀 고통 속에서 악귀가 되어 자신의 자손들을 원망하며 죽이기까지 한다.

또한 비 오는 날에 화장을 하면 영혼이 좋은 곳으로 못 간다는 속설 때문에 하지 않는 게 일반적인데 결국 장손의 아기까지 죽이려는 악행 때문에 비 오는 날 관을 화장하게 되며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진격의 거인이 아니고 거인정령 또한 1만 명의 적군의 목을 벤 자부심이 넘치는 일본 장군이지만 결국 죽어서는 범의 허리를 끊기 위한 쇠말뚝으로 쓰였다.

죽어서도 편히 쉬지 못하고 전쟁의 연속이라 생각하며 타국의 악지에서 긴 세월을 뿌리 막혀 있다. 몸집만 거대했지 실상은 나무와 물로 무찌를 수 있는 별것 아닌 존재로 판명 나며 퇴치당하고 봉인된다.

사실상 실체 없는 두려움이 거대한 악신이라는 실체로 드러났음에도 의지가 강한 인간에 의해 힘없이 당하는 모습에서 통쾌했고 짜릿한 것이 영화처럼 친일파와 일본의 잔재들을 파헤치고 뿌리 뽑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뚜렷한 감독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었다.

감상평

134분이라는 러닝타임이 짧게 느껴졌고 재미는 있었다. 너무 매력적이고 흥미로운 전반부에 매료되어 이대로 쭉 결말까지 완벽하다면 '서울의 봄' 이후 천만 영화 하나 나오겠구나 설레기까지 했다.

설레발이었을까? 중반부까지는 별다른 이견 없이 모두 흥미진진하게 볼 거라 예상한다. 그런데 후반부에는 호불호가 갈릴 거 같다.

'험한 것'의 우스꽝스러운 실체를 눈으로 직접 마주하니 긴장감은 사라지고 맥이 빠진다고 해야 할까? 아무튼 거인 오니의 등장 전까지는 완벽했는데 개인적으로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영화를 다 보고 난 후 이 영화는 단순히 K-샤머니즘으로 묘를 파서 미스터리한 '험한 것'의 정체를 밝혀내는 게 다가 아니었다. 친일파, 독립군, 일제강점기라는 역사적 사건을 통해 감독이 의도하는 메시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항일영화였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극 중 이름들이 김상덕, 이화림, 고영근, 윤봉길로 모두 독립운동가의 이름이었고, 파헤친 묘에 이순신 장군이 새겨진 100원짜리 동전을 영화 '명량'에서 이순신 장군 역할을 했던 최민식이 던진다던가 주인공들의 차 번호가 1945, 0815라든가 곳곳에 숨겨진 장치들이 많았다. 생각해 보니 참으로 집요하게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던 감독의 의지가 다시 보인다.

단순히 재미만을 놓고 본다면 개인적인 총평점은 10점 만점에 7점이다. 배우들의 연기는 두 말 할거 없이 뛰어났고, 연출도 좋았지만 갑자기 등장한 뿔 달린 일본 도깨비 거인의 등장에 실소가 터졌다. 일부러 일본 정령을 거대하지만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하고 나무와 물로 물리쳐낸 별거 아닌 존재로 풍자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의도가 어찌 됐건 등장 이후부터 몰입을 방해했다.

하지만 영화 3편을 연달아 오컬트 영화를 만들고 있는 장재현 감독의 뚝심과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장르의 어려움으로 인해 투자를 받기도 힘들고 제작에 어려움이 많아 점점 제작 편수가 줄어들고 있는 현실에도 불구하고 오컬트 영화에 진심이기에 몰두할 수 있었고 한길만 뚝심 있게 걷고 있는 거라 생각한다.

이제는 한국에서 오컬트 하면 장재현 감독이 떠오를 거 같다. 마니아 영화의 대중화에 기여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할 일이라 생각한다. 비록 파묘는 용두사미였지만 다음은 과연 어떤 오컬트 영화를 만들어낼까 그의 행보가 기대되고 기다려지는 건 사실이다.

항일과 오컬트의 오묘한 만남이 궁금하다면 한번 보시길 추천한다. 적어도 배우들의 놀라운 연기력에 돈은 아깝지 않을 테니 말이다.
나는 이 영화에 스릴과 공포를 기대했지만 뜻밖에 나의 애국심을 소환시켰다. 그 점도 생각해 보니 참 흥미롭다.
다시 보면 또 다른 게 보일까? 한번 더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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